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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서 쓰는 이야기

부러진 화살: 정의를 향해 꽂힌 화살




연기파 배우들의 대거 출동,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영화 <부러진 화살>은 젋고 인기많은 배우 하나 없이 100분이라는 러닝타임을 충분히 팽팽한 긴장감으로 끌고 나간다. 오랜만에 배우 안성기는 김경호 교수라는 역할을 통해 정말 표정하나 주름살 하나, 말투에 드러나는 쉼 하나하나까지 완벽한 캐릭터로 다시 태어났다. 영화를 보는 내내 눈을 뗄 수가 없게 만드는 굉장한 연기력은 두 말할 것도 없고.

안성기를 비롯하여 변호사로 나오는 박원상도 사실 '얼굴은 알지만, 이름은 몰랐던 배우' 중 한 명이었는데, 연기력은 물론이고 정말 제대로다. 더하지도 않고 덜하지도 않은 감정 표출 방법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너무 가볍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무겁지도 않아서 오히려 더 진짜 알짜배기 느낌이었달까.

영화 한 편에 등장하는 모든 배우가 하나 빠짐 없이 오밀조밀하게 구석구석 꽉 채워진 느낌을 받았고, 잘 물린 톱니바퀴처럼 법정과 구치소를 왔다갔다하면서도 관객이 한 눈 팔 짬조차 없도록 촘촘하게 잘 짜여진 영화였다.

정지영 감독님은 2010년에 제천에서 개인적으로 일하면서 몇 번 마주친 적이 있었는데, 그 당시 같이 일했던 한OO 팀장님께서 정지영 감독님께는 꼭 당신이 손 수 전화를 드려야 한다며 몇 번이고 나에게 이 '노장 감독님의 위대함'에 대해 역설하셨던 기억이 새삼 떠오른다. 나이가 들수록 무시할 수 없는 연륜이란 건 이렇게 화려한 셋트장이 아니어도 충분히 내용을 오목조목 잘 구성할 수 있고, 쓸 데 없는 장면 하나 없이, 수식하는 내용 없이도 영화 자체를 담백하게, 그러나 힘은 넘치게 구성하는 기술을 의미하는 걸 거다.



<부러진 화살> 예고편 


더불어서 사회적으로 핫!이슈였던 사건을 영화로 재구성하고, 비록 많은 개봉관은 아니더라도 시민들의 소문을 통해 다시 한 번 사건에 대해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지혜도 연륜에서 비롯된 거라고 칭하고 싶다. 적당한 선에서 도를 넘지 않는 연출력이 관건인데, 최소한의 자극적인(딱 한 컷, 너무나도 불쾌한 씬이 있었지만, 그게 정말 현실이고 사실일 수 있기에 더 불쾌했다는 걸 안다.) 장면으로 디테일의 힘을 살렸다는 느낌을 받아서 좋았다. 

영화 말미에서 사법부의 권위는 과연 누가 만들어 낸 것이냐고 외치던 박변(박원상 역)의 최후 변론은 (그 시절이나 지금이나 똑같이 적용되는 부분인 것 같고) 약간 더 자극적으로 혹은 요즘 세태에 따라서 더 노골적으로 만들 수도 있었을텐데 오히려 더 담담하게 일상을 풀어내듯이, 100% 표출하지 않는 대사, 표정들, 그 연출이 모두 다 좋았다. 만약 노골적으로 만들었거나 영웅심리, 진보의 힘을 더 끌어냈더라면 약간의 오글거림이 있었을테지.

나는 실제로 이 사건을 잘 알지 못하지만, 우리 어머니 아버지께서는 영화 속 배우 안성기가 열연했던 실제 인물이나 사건들을 잘 알고 계셨고, 영화를 보고 나신 후에 '이런 영화야말로 주변 사람들에게 계속 권해야 하는 작품'이라고 말씀하셨다.

정치적 사안을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낸 영화는 정치적 입장이 다른 사람과 함께 보기에는 살짝 불편할 수도 있겠지만, 우습게도 내가 이 영화를 같이 관람한 언니는 진보에 가까운 나와 정치적인 입장이 거의 정 반대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영화 속에서 김교수(안성기 역)가 '나도 보수 꼴통이니 보수 꼴통 판사랑 잘 통하겠다.'라고 말하듯, 이 영화가 정말 진정한 '보수'의 역할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고 생각했다. 나와 정치적 견해가 다른 사람과 봤어도 한 번쯤 가볍게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서로의 입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이런 영화가 흔치는 않을 거다. 좋은 영화의 힘이란 이런 거겠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