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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

뭐라도 입밖으로 뱉어야 보배지: 20120213



중 고등학교 때까지 무지무지하게 착실한 학생이었던 나는 계획을 참 잘 세우는 학생이었다.
그 절정은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시작되어 3학년 여름방학 때 달하였으니..

내가 선택했던 당시 사탐 과목은 한국지리와 세계지리, 국사, 사회문화였는데
지리 전공자로서 안타깝게도 한국지리와 세계지리는 그 당시 문제집도 별로 없었고, EBS 기본 문제집외에는 3-4권 정도 뿐. 그래서 온갖 브랜드에서 나왔던 찌질한(정말 찌질한-오류도 많고, 오탈자도 많고 문제 자체도 찌질했던) 모의고사 8절 문제집을 엄청 사댔다.
보통 모의고사 문제집은 앞 부분에 챕터별로 정리가 되어 있었고, 뒤쪽에 모의고사가 많으면 약 15회분, 적으면 10회분 정도 수록되어 있었는데 그걸 하루에 두 챕터씩 복습하고 풀고 복습하고 풀고를 반복해서 나중에는 공부할 국내 문제집이 없을 수준이었다.

정말 무식했었지.

EBS 두꺼운 문제집을 사는 날에도 무조건 목차부터 펴놓고서 2챕터씩 무조건 나누어 풀어야 할 일자를 적었다. 국/영/수/사탐 2과목씩 목차에 날짜를 적어놓고서 정말 대책없이 매일 그 정해진 일정 양은 꼭 풀어야 한다고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그 때는 그 계획을 지키는 재미가 (미친 것 같지만) 쏠쏠 했다.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몰라도 그렇게 한 달에 10권정도 문제집을 다 풀어재끼고 나면 다 내 머릿 속에 지식이 쌓여있는 것 같고 그랬었다. 그리고 스스로 계획을 잘 지켜냈다는 뿌듯함이 있었고.

그런데 대학교에 들어간, 그리고 지금 졸업한 순간부터 해이해진 정신 상태 때문인건지. 아니면 그 당시보다는 세워야 할 계획이나 지켜야 할 목표들의 파이가 커졌기 때문인건지 머릿 속으로만 뱅글뱅글 제대로 무언가 일이 굴러가는 것 같지 않은 느낌이 든다. 

그래서 요즘 들어 느끼는 건데, 너 앞으로 어떻게 살래? 라고 누군가 물어보면, 열심히 짱구를 떼굴떼굴떼구르르르 굴려서 그 순간 상대방에게 답하는 그 이야기가 어느 순간 나의 인생 계획이 되어 있고, 뭔가 내 인생의 다음 챕터 목표랄까 그런 비스무리한 것이 되어 있다는 거.

이런게 나이 먹는다는 건가, 그렇다면 별로 좋지 않은 것 같다. 아니다. 좋다 좋지 않다를 나눌 뭔가의 기준점조차도 상실되어버린 느낌.... 윽.

그래도 그나마 계속 꾸준하게 멈춰있지 않고 나 자신을 되돌이켜보면서 살고자 노력하는 건 긍정적인 거라고 애써 자위하면서, 요즘 이렇게 사는구나. 내가. 쓰읍-  *